2015년 1월 24일 경향신문

- ‘창조경제’ 아닌 ‘참죠경제’ ] 정부는 경제성장이 소득 불균형의 개선도 가져올 것이라는 입장인데 지난 몇 년 동안 경제성장 위주의 정책을 썼음에도 소득분배도 경제성장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현 정부는 창조적 경제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창조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정책들만 내세우고 있다. 부동산 경기 부양 등을 통한 내수 진작은 가계부채라는 시한폭탄의 폭발 위험만 키울 가능성이 높고, 규제는 없을수록 좋다는 식의 ‘규제 혁파’는 재벌기업들로의 경제력 집중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또 참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경제를 ‘창조경제’가 아닌 ‘참죠경제’라고 부른다. 창조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현훈 강원대(경제무역학) 교수는 인적자원의 질적 수준과 활용도를 높임으로써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동시에 경제주체로서 소외계층의 경제활동을 확대함으로써 소득과 부의 분배 정상화도 가능한 ‘포용적 성장’을 제안한다. http://goo.gl/dg9OZF

[ ‘하면된다’는 사기다 ] 어르신들 말처럼 ‘하면 된다’식의 정신을 지금 시대에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르신들의 시대와는 경제환경이 판이하게 다르다. 성장은 멈추었고 혁신도 일자리를 혁신적으로 늘리지는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하면 된다’는 어쩌면 ‘수탈’을 최적화하기 위한 담론이다. “아르바이트로, 인턴으로, 수습으로, 비정규직으로 조금만 더 고생하면 구직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곧 안정적 일자리라는 미래를 얻을 것이다”라며 눈앞에서 희망의 딸랑이를 흔들어 대는 식이다. 그렇게 노동을 착취해서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대체로 담론을 유포하는 사람들과 겹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하면된다’는 일종의 사기다. http://goo.gl/yOvl8m  

- [ 박 대통령, 문짝 바꾸면서 문고리는 그대로 ]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신임 국무총리 후보에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65)를 지명했다. 하지만 인적쇄신 핵심으로 지목돼온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비서관에 대해서는 일부 업무조정만 했을 뿐 그대로 청와대에 남게 했다. http://goo.gl/lJuEB9 

- [ 신망 높은 그 분이 청와대로 간 까닭 ] 이번에 민정특보라는 낯선 직책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이명재 전 검찰총장. 그는 검찰 총장을 지내고도 평판을 잃지 않은 ‘희귀한’ 인사다. 2001년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법복을 벗은 그는 이듬해 신승남 당시 총장이 동생의 비리로 물러난 후 총장에 올랐다. 현직 검사가 아닌 첫 검찰총장이었다. 이후 신 전 총장 등 전·현직 검찰 실세를 기소하고 대통령의 두 아들을 구속했다. “진정한 무사는 얼어 죽을지언정 곁불을 쬐지 않는다”며 검사의 명예를 강조한 취임사는 지금도 회자된다. 취임할 때 007가방 하나 들고 갔다 퇴임할 때 이 가방만 들고 나왔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서울지검 피의자 구타 사망사건’으로 사퇴했지만, 이 또한 책임 있는 공직자의 자세로 평가받았다. 경향신문 김민아 설위원은 “그는 72세에 사법시험 11회 출신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보다 14세 많고 사시 기수는 12년 선배다. 김진태 검찰총장보다는 9년 연상에 시험으로 13년 선배다. 48세로 아들뻘인 우병우 신임 민정수석과는 같은 대구·경북(TK) 출신이다. ‘수도승 총장’이 돌아온 까닭은 몰라도, 박 대통령이 그를 부른 까닭은 짐작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날 발행된 경향신문 5 제목은 “이명재 민정 특보 ‘TK 검찰 수장 출신…검찰 장악 포석”이다. http://goo.gl/CwnDIH

- [ 한국 경제를 성장시킨 ‘집단적 결심’ ] 전쟁은 인간이 벌이는 일 중에서 가장 반생명적이다. 전쟁은 생명 존중을 중심으로 구축된 인간다움의 가치들을 전복시킨다. 평시에는 강력 범죄인 살인과 방화도 적에 대한 행위일 때에는 훈장감이 되는 것 처럼. 전시의 사람들은 생존의 목적을 생존 자체로 한정한다. 그럴수록 삶과 죽음이 모두 가벼워지고 물질의 가치만 치솟는다. 그런 조건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밑바닥’은 말 그대로 밑바닥이다. 전시의 인간은 자의로든 타의로든 수시로 ‘가축만도 못한’ 행동을 한다. 그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나라를 이만큼 발전시킨 세대에게 헌정된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국제시장>이 화제가 되면서 그 시절을 지배했던 의식과 태도,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 중에나 전쟁 직후에나, 자식들에게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 결심이었다. 한국 경제를 성장시킨 견인차 중의 하나는 이 집단적 결심이었다. 이 결심 안에는, 자식들은 ‘인간성의 밑바닥’에 도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염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전쟁 때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건 <국제시장> 세대의 성취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들의 일생 자체를 모욕하는 짓이다. http://goo.gl/HkQdYx

- [ 로마 군대 주둔지가 와인 명산지 된 이유 ] 동서고금 따질 것 없는 불변의 사실. ‘돈은 돌고 돈다.’ 제국시대 로마의 동전도 황궁에서부터 황제의 권력이 미치는 곳까지 돌고 돌았다. 로마의 둥근 청동 화폐 ‘세스테르티우스’도 군대를 통해 전세계로 퍼졌다. 로마는 군사력을 통해 영토를 넓히고 정복지를 관리했는데 군대는 돈을 가지고 다니며 유통시켰다. 당시 동전은 통화수단일 뿐만 아니라 황제 등극과 같은 정보를 알리고 황제의 업적을 홍보하는 수단이었기에 군대 발길이 닿는 곳엔 어김없이 동전이 뿌려졌다. 또 당시 포도 재배는 군대에만 허가됐다. 룩셈부르크·벨기에 접경 트리어는 모젤 와인으로 유명한데, 로마군이 주둔하면서 포도 생산지로 각광을 받았다. 오늘날 유럽 와인 주산지와 로마군 주둔지가 겹치는 이유도 그런 연유가 있다. 신간 <고대 로마제국 15,000킬로미터를 가다(까치)>. http://goo.gl/uexeic

- [ 한자의 탄생 ] 청나라 광서제 25년이었던 1899년, 왕의영이라는 이가 말라리아에 걸린 친척을 치료하기 위해 용골(龍骨)을 구하고 있었다. 용골이라고는 하지만 아마 흙 속에서 캐낸 오래된 동물 뼈였을 것이다. 왕의영은 뼈에서 날카로운 칼로 새긴 듯한 기호를 발견했다. 호기심을 느낀 그는 더 많은 용골을 사들였고, 이 기호들이 거북 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새겨진 한자의 초기 자체(字體)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출토된 거북 껍질과 짐승의 뼈는 10만점이 넘었고, 문자의 수는 4000개에 이르렀다. 이것들이 갑골문이다. 예를 들면 아침 단(旦) 자는 태양이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신간 <한자의 탄생(김영사)>. http://goo.gl/17VUQB

- [ ‘황소’는 대접받고, 그린 이중섭은 홀대 ] 의 묘는 이중섭(1916~1956)은 노매드(유랑민)였다. 호는 ‘대향’(大鄕). ‘덕지덕지 아들딸 많이 낳아서 그놈들과 대향촌(큰 고을)을 만들어’ 정착하고 싶은 게 중섭의 꿈이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전쟁과 가난으로 그는 끊임없이 떠돌았다. 평양 출신 중섭이 일본 도쿄-원산-부산-제주-통영-진주를 거쳐 서울에 거처를 마련한 것은 1954년 7월, 나이 39세 때였다. 종로와 마포에 살며 열심히 그려낸 그림은 1955년 1월18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이중섭개인전에 걸린다. 4월엔 대구 미국문화원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두 번의 전시는 화가 이중섭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경제적 어려움은 그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정신분열증이 심해지면서 그는 대구와 서울의 병원을 전전했다. 일 년의 투병은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끝이 났다. 중섭이 숨지던 1956년 9월6일, 그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무연고자’로 처리 됐고, 시신은 뒤늦게 부음을 들은 친구들에 의해 화장된 뒤 망우리 묘지에 묻혔다.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산 57번지. 이곳에는 이중섭 이외에도 한용운, 이인성, 방정환, 오세창, 문일평, 지석영, 조봉암, 박인환, 최학송 등 수십명의 문화예술가·독립운동가들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대부분의 유명인 묘지에는 산책로 옆에 연보비나 기념비를 설치했으나 이중섭 묘지에는 어떠한 표지도 없다. 유명인 묘지 가운데 이중섭 만큼 소홀히 관리되는 곳은 없다. 내년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다. http://goo.gl/pkrSMM

 

 

Posted by jino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