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을 보고 알게 된 것_2016년 12월 10일
- [ 막 내린 박근혜 18년 정치인생 ] 박근혜 대통령(64)의 18년 정치인생이 실패로 막을 내리게 됐다.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안 통과로 박 대통령은 헌정사에서 임기를 채우지 못한 또 한 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추락을 촉발했지만, 실상 집권 4년 동안 역주행과 일방통치에 쌓였던 민심의 반감이 이번 일로 폭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초부터 박 대통령 부상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존재에 힘입었고, 아버지 통치 스타일을 적극 차용한 점에서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말로도 여겨진다. 박 전 대통령이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지 18년만인 1979년 10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총탄에 사망한 데 이어 박 대통령이 정계 입문 18년 만에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것도 아이러니하다. https://goo.gl/VeygpA
- [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촛불의 승리'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2월9일 국회에서 가결됐다. 탄핵 가결정족수 200표를 훨씬 웃도는 234표가 나왔다. 탄핵안의 압도적 가결은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탄핵을 요구해온 ‘촛불 민심’의 승리로 평가된다. 시민은 지난 10월29일부터 매주 토요일 서울 광화문을 가득 메우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줄기차게 요구했고 결국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권력의 주인인 시민들이 헌정질서를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대통령에게 준엄한 심판을 내린 것이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가장 뜨거웠던 광장의 ‘시민 정치’가 죽어가던 민주주의를 소생시켰다. https://goo.gl/Z1iqOn
- [ 탄핵열차, 새누리 절반 탑승…친박도 20명 동승 ] 새누리당 비박계의 표 단속과 친박계의 ‘샤이 탄핵표’(숨은 찬성표)가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어졌다. 친박계에서 20표 안팎이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과 무소속 의원 등 172명이 모두 투표용지에 ‘가(可)’를 적었다고 가정할 경우 찬성 234표 중 새누리당 의원들 표는 62표다. 새누리당 전체 의원 128명의 절반가량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탄핵안 찬성률 약 78%는 사실상 국민 여론조사 결과와 유사하다. 박 대통령 탄핵안 처리 결과를 두고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했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실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탄핵 찬성률을 보면 78%였다. https://goo.gl/Zqcc1Z
- [ 박 정권 핵심으로 대통령 권한대행 오른 황교안은? ]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권한대행에 오른 황교안 국무총리(59)는 박근혜 정부 출범부터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까지 모두 지켜본 정권의 핵심 인물 중 하나다.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 정부 첫 법무장관을 지냈다. 1957년생으로 경기고·성균관대를 거쳐 1981년 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대표적 공안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코드에 잘 맞는다는 평가를 받았고 2년2개월 장관 재직 기간 동안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결정이 나왔다. 황 권한대행은 2011년 한 교회 강연에서 “김대중 같은 분이 딱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소위 공안통으로 이름나 있는 검사들은 전부 좌천됐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부에 오래 있던 사람들에 대해 또 곱지가 않겠지요”라고 했다. 그는 1977~1979년 대학 재학생이라는 사유로 징병검사를 연기했고, 1980년 검사에서 피부질환 치료를 위해 6개월 이상 병원 진료를 받아 제2국민역(면제) 판정을 받았다. https://goo.gl/e4bijG
- [ 황교안의 타고 난 관운 ] 황교안 총리만큼 관운이 좋은 사람이 있을까. 한 달 전만 해도 그는 총리실에서 짐을 빼야 할 궁박한 처지였다. 후임 총리로 김병준씨를 지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당이 김병준 카드를 거부하면서 자리를 지켰다. 공안검사였던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을 꾿꾿이 버텨내고 보수 정권이 들어서자 사법시험 동기들 중 가장 먼저 고검장을 달았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초대 법무장관에 발탁됐다. 징병검사를 3차례 연기하다가 피부병으로 군 면제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병역기피 논란이 일고, 고검장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한 1년여 동안 수십억원을 벌어 전관예우 비판이 제기됐지만 그의 장관 입성을 막지는 못했다. 오창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그가 국무총리가 된 것도 팔할이 운이었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죽기 전에 경향신문과 통화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완구 당시 총리가 성완종 게이트로 취임 2개월여 만에 낙마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온 우주가 나서서 그를 도와준 셈이다”라고 말한다. https://goo.gl/lisi5o
- [ 정세균, 2004년엔 의장석 점거 “반대”…2016년엔 ‘탄핵 의사봉’ ] 정세균 국회의장(66)은 열린우리당 의원이던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에 반발하며 박관용 국회의장석을 점거했다. 야당인 한나라당·민주당의 강행처리에 필사적으로 맞섰다. 12년 뒤 2016년 12월9일 정 의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처리를 위해 의장석에 앉았다. “가 234표, 부 56표, 무효 7표, 기권 2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합니다”라고 한 뒤 의사봉을 두드린 정 의장은 헌정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 탄핵안을 처리한 입법부 수장이 됐다. 헌정사상 두번의 대통령 탄핵의 중심에 선 셈이자. https://goo.gl/mppQwT
- [ 40일짜리 민정수석 최재경 후임에…세월호 막말 조대환 ] 박근혜 대통령은 12월9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54)의 사표를 수리하고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 출신 조대환 변호사(60·사법연수원 13기)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조 수석은 특조위 부위원장 시절 “세월호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으며 전리품 잔치를 하는 곳이었다”고 막말을 했던 인사다. 세월호 참사 직무유기 등 사유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 세월호 진상 조사를 방해한 인물을 민정수석에 임명한 것이다. https://goo.gl/b79U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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