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9일 경향신문
- [ 돈 중심의 세계관 ] 요즘 강의실에 앉아 있는 대학생들은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났으니 초등학교 시절 IMF 시기를 통과했을 것이다. 부모가 실직이나 폐업, 도산의 당사자였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경제 난민’ 대열에 속하지 않았더라도 친척이나 이웃 중 누군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짓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사춘기 시절,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가슴앓이보다, 기성세대에 대한 이유 없는 반항보다 ‘경제적 공포’가 훨씬 더 깊이 각인된 것이다. 청소년으로 자라나는 사이 구조조정, 명예퇴직, 비정규직, 고용 없는 성장, 승자독식과 같은 신조어가 관용어구로 자리 잡았다. 그러는 사이 부모들의 가치관 아니 자녀 교육관은 급격하게 ‘돈’으로 쏠렸다. ‘어떻게 해서든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 대학 졸업장이 직업을 결정하고, 직업(연봉)이 삶의 질을 보장한다는 생각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졌다. 시인인 이문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들에게 한 세상이 일러준 미래는 단 하나였다. 대학. 대학이 유일한 출구였다. 대학에만 들어가라, 그럼 그때부터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다수 대학생들에게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난다. 경쟁의 터널을 빠져나온 대학생들 앞에 더 길고 어두운 터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 대학에 다니는 거의 유일한 이유가 취업이다. 더 가혹한 ‘입시’, 아니 최후의 관문으로 여겨지는 취업에 대한 학생들의 강박은 상상을 넘어선다”고 말한다. http://goo.gl/D3eNQP
- [ 일확천금의 꿈, 패가망신의 현실 ] 카지노는 ‘작은 집’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다. 어원인 카자(casa)는 르네상스 시대 귀족 소유의 사교·오락용 별관을 뜻한다. 18세기 들어 유럽 왕국들이 재원 충당을 위해 옥내 도박장을 잇따라 개설하면서 일반화됐다. 한국에서는 2000년 개장한 강원랜드에 한해 내국인 출입이 허용되었다. 카지노는 확실한 국가 재정 확보 수단이지만 본질은 인간에게 유익하지 않은 사행산업이다. 조호연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첩보영화 ‘007’ 시리즈에는 주인공이 카지노에서 도박하는 장면이 많다. 출중한 도박 실력으로 거액을 따내 관객에게 일확천금의 꿈을 대리 경험하게 한다. 그러나 이는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은 딴판이다. 도박중독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은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해양수산부가 그제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크루즈선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크루즈선상에서만 카지노를 할 수 있어 건전한 레저수단이라는 것이다. 배 타고 카지노 하면 사행성이 없어진다니 이런 궤변이 없다.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라지만 국가가 앞장서 사행을 부추기는 것은 안 될 일이다”라고 말한다. http://goo.gl/mBdMfN
- [ 악마의 혀를 닮은 17번 홀 ]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5의 메이저 대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린 플로리다주 TPC 소그래스 스타디움 코스(파72·7215야드). 역시 17번홀(파3)이 변수였다. 첫날은 공 21개가 연못으로 사라졌다.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파3홀’이란 별명답게 첫날부터 풍성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TPC 소그래스 17번홀은 그린 뒤편 스탠드에 편히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 갤러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지만, 선수들에겐 가장 큰 부담을 안겨주는 홀이다. 티샷 지점에서의 거리는 120m밖에 안되지만 그린 전체가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일랜드 그린(실제는 반도 모양)이고, 길이도 24m에 불과해 자칫하면 공을 물에 빠뜨리기 쉽다. 그린 스피드가 빠르고, 한쪽에는 작은 벙커가 도사리고 있으며 상공에 휘도는 바람도 시시각각 변해 어떻게 강약을 조절하느냐가 큰 관건이다. 사진을 보니 정기적으로 공을 건져내지 않았다면 아마도 연못 속엔 수만개의 골프공이 침몰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http://goo.gl/jaiHk4
- [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난 느낌 ] 임권택 감독은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라는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한 이후로 지금까지 역사와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이번에 개봉한 <화장>까지, 그는 감독으로 102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그중 <천년학> <취화선> <춘향뎐> <아다다> <씨받이> 등 사극만 해도 수십편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아제아제 바라아제> <태백산맥> <장군의 아들> 등 역사나 그에 근거한 시대극을 많이 연출했다. 임권택 감독은 많은 시대극을 많이 연출한 이유를 “역사를 통해 현재를 보고 미래를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보존하고 기억해야 할 유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도 궁에 많은 사람이 찾아오길 희망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수록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테니. 그래서 아름다운 행사 등을 통해 세상에 잘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창덕궁 달빛기행’이라는 야간 행사를 체험해본 적이 있다. 아, 정말 아름다웠다. 마치 죽은 것이 살아난 것 같아 무척 행복했다”고 말하며 올해 처음 열린 제1회 ‘궁중문화축전’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당부했다. http://goo.gl/OHiN8A
- [ 죽음에 대한 시대의 시선 ] 플라톤은 죽음을 종결·상실로 파악하지 않고, 삶이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이주로 여겼다. 그는 죽음에서 희망적인 가치를 발견하려 했다. 플라톤 사상을 마중물로 하는 철학자들은 죽음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 나섰다. 로마 시대 키케로는 “철학자들의 전 생애는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점철된다”고 했다. 키케로의 말마따나 죽음은 철학적 사유의 중요한 테마였다. 삶이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파고들자면 죽음이라는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죽음을 삶과 분리해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는 육체를 영혼의 무덤이라고 일갈했는데 이원론의 시조쯤 된다. 데카르트는 육체를 태엽 감는 시계에 비유했다. 이 때문에 죽음은 한 기계의 종말을 의미할 뿐이다. 칸트, 헤겔 같은 이성주의 철학은 영혼을 다르게 부르자면 정신, 이성인데, 이런 것들은 죽음과 달리 불멸성을 지닌다고 봤다. 반면 스피노자와 쇼펜하우어는 죽음은 지극히 사적인 사건이라서 보편적인 것을 논할 여지가 없다고 봤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문화적인 것이기도 하다. 시대 분위기 따라 죽음에 대한 태도도 상이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의 서평을 쓴 경향신문 서영찬 기자는 “한 시대가 어떤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보는가는 삶을 어떻게 성찰하는가와 직결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사유는 의미 있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신간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구인회 저·한길사)> http://goo.gl/uiX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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