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3일 경향신문
- [ 메르스 환자가 죄수인가 ] 6년 전 신종플루 때 감염된 환자를 어떻게 불렀나. 기사를 검색해보니 2009년 5월 국내 첫 신종플루 확진 환자는 51세 수녀였다. ‘1번’이 아니고 첫 번째였다. 2003년 사스 첫 추정 환자 역시 ‘1번’이 아니고 40대 남성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환자를 가리킬 때 주로 번호를 사용한다. ‘14번 환자’와 ‘35세 남성’은 달라 보인다. 이문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환자에게 번호를 매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감염 시간, 감염 경로를 강조하기 위한 고려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반대로 행정 편의주의의 발로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몇 번 환자 대신 ‘15번째 환자 박모씨’라고 부를 수는 없었을까. 내게는 저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15번 환자에게서는 인간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15번 환자는 인간이기 이전에 격리시켜야 할 감염자일 뿐이다. 또 자가 격리라니. 전쟁이 일어났는데, 국가가 각 가정을 진지로 만들어 각자 전투에 임하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환자 이름 대신 일련번호를 매기는 ‘국가의 마음’과 자가 격리를 대책이라고 내놓는 ‘국가의 마음’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라고 일깨운다. 경향신문은 6월16일자 신문부터 ‘○○번째 환자’로 표기하고 있다. http://goo.gl/6txVAe
- [ 삼성병원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 ‘사회적 비용’이라는 용어는 흔히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하는 각종 비용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이를 학문적 개념으로 정립한 유럽 제도주의 경제학자 칼 윌리엄 캅의 저서 제목은 ‘영리기업의 사회적 비용’이다.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개인 혹은 조직이 자신들이 응당 치러야 할 비용을 치르지 않고 이를 사회에 전가시키는 것을 중심적인 문제로 삼는 것이다. 이는 그 개인이나 조직의 도덕성을 문제로 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리사업 자체가 필연적으로 비용을 사회에 전가시키는 경향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우리나라의 민간 병원들이 거두고 있는 이윤 속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 즉 그들이 마땅히 지불했어야 할 비용들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구조적 차원이다. 허약하다 못해 사실상 무력화되다시피 한 공공의료 시스템으로 인해 전국의 환자들을 집중시켜 대기업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몇 개 대형 병원들이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은, 양자가 표리를 이루고 있음을 말한다. 이렇게 몇 개의 큰 병원들의 큰 이윤은 결국 공공의료 시스템의 위축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으며, 지금 우리는 그 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 http://goo.gl/ddT8jn
- [ 질병의 치유에도 계급이 있다 ] 메르스는 세월호와 다르다. 이것은 벌어진 일이 아니라 벌어질 일이고, 어떤 불행한 이들에게 닥친 비극이 아니라, 언제 내게 닥칠지 모르는 불행이다.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전염병은 공공적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상업적이고 영리를 추구하는 사설병원들은 전염병 환자 공개 및 차단, 치료와 병상 제공, 나아가 병원 폐쇄를 당연히 꺼린다. 삼성서울병원은 확산의 두 번째 진원지임에도 불구하고, 병원 폐쇄나 병원 환자에 대한 전체적인 역학조사는 뒤늦게 이뤄졌다. 그래서 의료행위는 비즈니스 이상의 ‘공공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강제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하고, 공공의료 시스템과 공공병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학자 권영숙씨는 “전염병이 아무리 보편적이고 공공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질병인 한, 그 안에는 계급적 지형이 있다. 국립의료원이 메르스 퇴치 ‘거점 병원’으로 지정되면서, 그 병원의 기존 주요 환자들이었던 서민층 100명이 병상을 비워주고 쫓겨나고 있다는 사실. 흥미롭지 않은가. 질병은 결국 계급적인 성격을 가진다. 평소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빈곤층 노약자들, 하루 노동을 잠시 멈추거나 노동 이후 푹 쉬지 못하는 이들이야말로 사회적 ‘고위험군’이다. 예방용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한 채 노동하고 거리에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또 어떤가. 택시노동자들, 건설노동자들, 서비스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 쪽방동네 사람들. 질병의 계급적 측면이다. 전염병처럼 ‘고위험’ 질병의 경우, 그것은 사회적이다. 즉 계급적이다. 예방도 치료도 사망도. 전염병의 공공성을 확인하는 한편에 메르스의 계급적 지형이 놓여 있다. 진짜 공공성은 바로 그 지점까지 살피는 것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http://goo.gl/YbYt1q
- [ 뇌물이 판 친다는 건… ] 누가 좀 잘나간다 싶으면 “너 뇌물 먹였지?”라는 농담을 스스럼없이 할 정도로 ‘뇌물’은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최근에는 ‘성완종 리스트’가 온 나라를 강타했다. 급행료, 불법 수수료, 사례비 등 범죄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애매한 일상의 소소한 뇌물도 수없이 많다. ‘촌지’나 ‘떡고물’ 또한 살면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신간 <뇌물의 역사>는 인간 사회에 침투해 있는 뇌물을 잘 다스려야 하는 암세포와 같은 존재로 규정한다. 인간의 욕망이 동물의 삶과 다른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뇌물이라는 암을 키웠다고 본다. 저자들은 인류와 함께 존재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뇌물의 역사를 동서양을 아우르며 샅샅이 훑고 있다. 경향신문 문화부 권재현 기자는 “뇌물이 판을 친다는 건 국가의 ‘착취’가 민중들이 감내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의미도 있다. 세금과 부역 부담으로 민초들이 신음하는 상황에서 뇌물에 맛을 들인 지방 관리들이 적극적인 수탈에 나서는 단계에까지 이르면 결국 분노가 폭발한다. 구체제의 악질적인 관행에 저항해 터진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들이 관리나 양반보다 향리를 먼저 공격한 걸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신간 <뇌물의 역사(이야기가 있는 집)> http://goo.gl/99sP43
- [바쁘면 성공, 한가하면 실패 ] 현대인들은 바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바쁨을 자랑한다. 바쁨은 성공, 한가함은 실패라는 문화 탓이다. 경향신문 문화부 한윤정 선임기자는 “뇌과학자들에게 취재한 결과 시간 스트레스는 뇌와 몸을 파괴한다. 지적 능력의 근원지인 전전두엽은 시간 압박을 받을 때 제 구실을 못한다. 우리 몸이 계속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면 심혈관계 질환, 고혈압과 당뇨, 관절염과 골다공증, 비만과 치매가 유발된다. 특히 여자들은 스트레스에 2배 취약하다”고 말한다. 신간 <타임 푸어(더퀘스트)> http://goo.gl/UN3UQ5
- [ 리더에게 중독된 조직의 미래 ] 국가든 기업이든 어떤 조직의 가장 꼭대기에 앉아 있는 리더의 행실은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바람직한 영향을 미치면 좋겠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 한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리더가 미치는 악영향이 조직 전체를 감염시킨다는 점이다. 경향신문 문화부 문학수 선임기자는 <중독 조직>을 인용해 “구성원 대부분이 수장의 말과 행동에 감염되면, 이상하리만치 비정상이 용납되면서, 그것을 너무도 쉽게 정상으로 용인하며 심지어 보호하기까지 한다. 그런 현상을 보이는 집단을 ‘중독조직’이라 한다” 책의 핵심은 세 번째 챕터인 ‘조직 내 중독의 네 가지 형태’다. 먼저 저자들은 조직의 리더 혹은 핵심 인물이 실제 중독자일 때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서술한다. “조직 내 핵심 인물이 가진 힘은 그들의 영향력, 그리고 그들이 구축한 네트워크와 연관”되기 때문에 “그들이 활성 상태의 중독자일 경우에 그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매개로 조직 전체를 거의 파멸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극적인 스타일, 우울증적 스타일, 편집증적 스타일, 강박적 스타일, 분열증적 스타일에 대해 서술한다. 두 번째는 ‘동반 중독자’의 문제다. 중독자에게 강력한 영향을 받으면서 자신도 역시 중독의 양상을 보이는 경우다. 예컨대 “중독가정에서 자란 성인이 직장 내 관리직을 맡으면, 이들은 대체로 일을 완벽하게 하라고 몰아붙이는, 함께 일하기 힘든 까다로운 상사가 된다. 이들은 통제 욕구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자신의 권한이나 책임을 쉽게 위임하지 못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려는 욕구도 크기 때문에 부하 직원들에게 헛갈리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중독조직에서는 “문제를 직시하거나 해결하는 대신, 문제를 임기응변으로 처리하고 문제를 영속화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저자들은 중독조직에서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으로 잘못된 의사소통, 소문이나 험담, 두려움과 고립, 거짓과 조작, 억눌린 감정, 경멸, 혼란, 현실 부정, 자기 중심성, 흑백논리, 떠벌림 등을 꼽는다. 결국 잘못된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중독을 조장하고 중독물로 기능하며 중독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이 책이 전하는 핵심이다. 신간 <중독 조직(이후)> http://goo.gl/7qG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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