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9일 경향신문
- [ 사과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 제대로 된 사과를 보기가 힘들다. 전쟁, 국가폭력과 같은 범죄에 대한 국가와 국정 최고책임자의 사과에서부터 뇌물수수와 같은 정치인들의 사과, ‘갑질’한 기업인, 혐오 발언한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다 그렇다. 이들은 자신이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듯하다. 뻔히 고통을 당한 당사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제쳐놓고 ‘국민’이나 ‘시청자’에게 사과한다. 아니 ‘사과’ 대신 ‘유감’이라고 말해서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헷갈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문화학자 엄기호씨는 “사과는 자신이 가한 행위의 ‘의도’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위다. 자신의 의도가 선한 것이었건, 악한 것이었건 그것이 피해자에게 구체적으로 고통을 가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사과다. 따라서 사과에 선행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행위가 왜 상대방에게 ‘본의와 달리’ 고통을 줄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래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실상 사과는 거의 불가능하다. 잘못한 이가 자신이 누구에게 어떤 고통을 줬는지를 이미 알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에 가해자는 뻔히 고통인 줄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고통을 준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사과는 들켰기 때문에 하는 사과다. 들키지 않았더라면 결코 사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가해자가 그가 고통을 가한 것에 대해 모르는 경우에도 사과는 불가능해진다. 무엇을 사과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사과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사과를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http://goo.gl/t1PNPE
- [ 미국은 광주 5·18 개입 사과하라 ] 2010년 5월 미합중국은 체로키를 비롯, 5개 미 인디언 부족들에게 자신들의 ‘잘못된 정책’과 폭력행위에 대해 공식 사과한다. 근 200년 만이다.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의 사과를 받기란 쉽지 않다. 제주 4·3사건은 반세기가 지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 사과를 받았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사실 제주 4·3의 경우 강경진압을 최종 지휘한 미군정에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 광주 5·18 역시 한국 정치에 개입한 미국의 책임이 크다. ‘잘못된 정책’인 광주개입에 대해 이제 미국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1979년 10·26이 발발하자 당시 미 국무장관 밴스는 코드명 ‘체로키’라는 일종의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편성해 서울의 미대사관과 동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하고자 했다. 코드명 ‘체로키’는 당연히 미국의 국익을 위해 존재했다. 밴스는 비밀전문에서 미국의 국익을 이렇게 정의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함으로써 ‘지속 성장하고 있는 한국과의 경제관계를 통해 최대한의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것. 광주 관련 미국의 개입의혹은 5월22일 오후 4시(한국시간 5월21일 오전 7시) 백악관 상황실에서 열린 ‘정책검토회의’ 회의록을 보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된다. 참석자는 국무부, 백악관, 국방부, CIA, 합참, NSC 등의 최고위 관계자들이었다. 결론은 ‘필요한 최소한의 무력 사용’을 통한 광주에서의 질서회복이었다. http://goo.gl/FQpWaF
- [ 역대 가장 초라한 5·18 기념식 ] 유가족들이 앉아 있어야 할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기념식장 의자는 공무원과 학생들로 채워졌다. 같은 시각 유가족들은 계엄군에 맞섰던 시민군이 최후를 맞은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 놓아 불렀다. 1997년 ‘5·18 민주화운동’이 정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희생자들이 묻힌 묘지와 옛 전남도청 앞에서 따로 기념식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곳에서 ‘제3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리던 18일, 광주에는 비가 내렸다. 정부 주관 기념식이 열린 국립5·18민주묘지는 예년보다 한산했다. 추모탑 앞 광장에 마련된 기념식장에는 ‘유가족’이라고 쓰인 의자가 놓여 있었지만 유가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최고위 인사는 총리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였다. 5·18기념식은 대통령도 총리도 유가족도 참석하지 않은 역대 가장 초라한 행사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 5·18기념식에 참석했지만 지난해에는 총리가 대신 참석했었다. http://goo.gl/KntWNg
- [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생존’ ] 과거에 아이들은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사, 판사, 교수, 기자, 소설가 등의 직업을 답변으로 내놓았다. 그런데 요즘은 “살아남는 것이 장래희망”이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단다. 에세이스트 김현진은 우리 사회에는 단 두 가지 선택만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빈둥거리며 시간제 일자리로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남들의 멸시를 감당하거나, 죽도록 일하고 죽어라 돈 벌고 걸레 짜듯 골수까지 짜낸 다음 50대에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 [ 불평등은 파국으로 가는 급행열차 ]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창비)는 원로학자 백낙청이 ‘젊은’ 전문가들과 만나 우리 사회가 어떤 전환을 이뤄내야 하는지를 묻는 책이다. 경제편의 대담에서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한국 경제는 “거시경제 쪽에서 보면 세 가지가 핵심”이었다고 말한다. “첫째가 물가를 올리면서 성장률을 높여왔고, 둘째는 환율을 계속 올리면서 수출을 늘려왔다는 것이죠. 물가나 환율이 오르면 우리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개인의 소득이나 자산가치가 줄어들죠. 셋째는 부동산 가격을 올리고 건설경기를 부추기면서 성장했습니다. 이런 세 가지 정책을 쓰면 단기적으로는 성장률이 조금 더 나아질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자산이나 소득의 분배구조를 크게 왜곡합니다. (중략)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꽤 빨리 성장해왔습니다만, 속으로 세 가지 정책의 부작용이 쌓여왔던 것이지요. 그런 부작용들이 모여서” 양극화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시장이 가장 완벽하게 작동할 때조차 불평등은 심화되며, 그런 의미에서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피케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세습 자본주의’로 명명했습니다. ‘21세기 자본주의는 부모로부터 부와 지위, 신분을 물려받은 상속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신 빅토리아식 계급사회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피케티의<21세기 자본>이 화제를 끈 이후 ‘불평등’이 세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불평등은 파국으로 가는 급행열차’라고 합니다. 이제 서둘러 우리가 그 열차를 멈춰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http://goo.gl/zZ26UV
- [ 새정치의 혁신, 2가지 동력 ] 어느 정당이든 위기에 처하면 당내의 일부 세력이나 그룹이 새로운 기치를 내걸고 혁신을 요구한다. 1970년대 초의 ‘40대 기수론’이 대표적인 예다.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 노선도 정통 마르크시즘의 실패에 따른 혁신 차원에서 시작됐다. 클린턴 대통령을 낳은 미국 민주당의 당내 서클 디엘시(DLC·Democratic Leadership Council), 영국 노동당의 현대화파도 당내 분파에 의한 혁신 성공의 사례들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새정치연합 내부에는 이런 혁신운동을 주창하는 그룹이 없다. 친노-비노 간의 식상한 지분 갈등이나 일부 당내 서클의 당권투쟁 개입은 혁신운동이라기보다 이권운동에 다름 아니다”라며 “새정치연합으로 하여금 보통사람의 열망을 대변하고, 그들의 삶을 책임지는 정당으로 거듭나게 하는 혁신의 동력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중성을 갖춘 유력 대선주자들의 정치연합이다. 문재인 대표, 안철수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이 혁신연대를 이루는 것이다. 3자 연대로 낡은 인물들을 솎아내고 당을 신선한 정당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다른 하나는 기초자치단체장들의 궐기다. 수원·고양·성남·부천 등 인구 100만 안팎의 도시에서 재선에 성공한 기초자치단체장들은 국회의원들의 정치독점과 계파정치의 폐해를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다. 그들의 분투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http://goo.gl/bxZK1b
- [ 삶의 현장에서의 ‘무차’ 실천 ] 무차(無遮)란 부처의 자비에 따른 차별 없는 평등사상이다. 승려와 속인,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누구나 참여해 부처의 덕과 지혜를 나누는 대규모 법회를 무차법회라 한다. <화엄경>은 “마음과 행동이 같지 않고 구하는 바가 저마다 다르더라도 평등하게 베풀어 모두 만족하게 한다”고 무차대시회(無遮大施會)를 언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고려 때 성행했다. 주로 백성의 어려움을 달래기 위해 무차회를 열었다고 한다. 조계종이 광복 70년의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지난 5월 16일 밤 서울 광화문에서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세계 간화선 무차대회’를 열었다. 수십만 불자들이 세종대로를 가득 채웠다. 종정 진제 스님은 법어에서 “사람이 곧 부처임을 깨달아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삶을 사는 일이 우리가 이루어야 할 서원”이라고 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너희들은 서로 화목하고 다툼이 없으며, 물과 우유처럼 서로 어울리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돌보며 사느냐”고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던 것을 상기시켰다. 김석종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과연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돌보며 살고 있을까. 대답은 ‘노’다. 시비와 다툼만 더욱 커진 세상이다. 스님들 역시 자비행보다는 탐진치에 깊이 빠진 모습이다. 재가불자였던 유마거사의 통절한 한마디가 그립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백번의 무차대회보다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무차를 실천할지가 관건 아닐까”라고 일깨운다. http://goo.gl/cQ9B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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