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3일 경향신문
- [ 박정희 “유신헌법은 엉터리” ] 1995년 봄, 서울의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전국 5대 도시의 현직 법관들에게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법부 관련사건’을 묻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유신 치하의 민청학련 사건 등 긴급조치 사건 판결’이 수치스러운 판결 1위로 나타났다. 문제는 한마디로 ‘유신헌법’에 있었다. 정작 그 창시자이자 수혜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미증유의 ‘위법(僞法)’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물론 겉으로는 그 정당성을 입에 올렸지만, 철석같이 믿는 측근에게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봐도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 방법은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 1979년 1월, 당시 대통령 경제특보이던 남덕우에게 한 말이었다(남덕우, <경제개발의 길목에서>, 2009). 경향신문에 <의혹과 진실-재판으로 본 현대사>를 연재하고 있는 한승헌 변호사는 “유신의 본체가 스스로 ‘엉터리’라고 실토한 그 유신헌법 때문에 이 나라와 국민이 겪어야 했던 참담함을 생각하니, 말문이 막힌다”고 말한다. http://goo.gl/7aXUV4
- [ 정치, 들은 적은 있으나 본 적은 없다 ]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자 생각을 공유하고 행동을 이끄는 좌표와 같다. 강제보다 설득에 의존하는 민주정치에서 말의 힘은 특히나 중요하다. 정치에서 적절한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 따라서 좋은 말, 공정한 말을 쓰는 것이 정치인에게는 거의 의무에 가까운 행위 규범이 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규범성에 소홀한 정치인의 말은 시민의 생각을 가두는 감옥의 역할을 한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오늘날 우리가 ‘정치 양극화’라고 부르는 현상은 부적절한 정치 언어에서 비롯된 바 크다. 여야 사이에서 혹은 같은 당의 계파 사이에서 그저 편을 나눠 ‘하게 되어 있는 말’을 반복하는 것, 마치 자신들만 옳음을 독점하고 있는 듯 내세우는 것, 상대를 마주 보고 차이를 좁히기 위해 대화하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등을 돌려 자신의 지지자를 향해 상대의 잘못을 일러바치고 모욕하는 것, 이런 식으로는 일이 잘될 리 없다. 그렇게 해서는 정치가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할 수가 없다”고 지적한다. 타협·조정·합의는 차이와 이견을 전제한 개념으로 민주주의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타협·조정·합의를 입에 담는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은 있어도 실천하는 것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http://goo.gl/X0o3bv
- [ ‘효율성’의 함정 ] 스마트폰 배터리를 아껴주는 앱이 있다. 하지만 낭비되는 전원을 찾는데는 만만찮은 전원이 소모된다. 메모리를 덜 차지하도록 하는 앱도 있지만 메모리를 상시 감시하는 큰 덩치의 프로그램이 도리어 메모리를 더 차지하기도 한다. 효율은 공학의 궁극적인 화두이고,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성능의 제품이나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은 모든 공학자들의 사명이다. 조환규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이 효율의 문제를 공학이 아닌 사회에 적용할 때에는 그 효율화 과정의 효율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효율화의 효율, 즉 메타 효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문제를 고려하지 않으면 모순된 상황에 빠지기 쉽다”고 말한다. 기업에서 잡무를 줄인다며 잡무를 조사· 분석하는 작업, 선별급식을 하기위해 가난 상태를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작업 등이 그 예가 될수 있겠다. 그리고 그 작업은 정교할수록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http://goo.gl/yF57sV
- [ 이루지 못한 귀가…산산히 부서진 봄 ] 경향신문 박래용 편집국장이 세월호 아이들이 끝내 가보지 못했던, 수학여행 일정을 따라가 봤다. 제주의 봄꽃 사이를 거닐며 웃고, 아쉬움을 남기며 금요일에 귀가 했어야 할 아이들…“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이 수학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학생 75명, 교사 3명만이 돌아왔다. 아이들의 꿈과 기억과 관계, 그들의 세계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맹골수도에서 절멸됐다. 열일곱 살 고교생의 남은 생의 예상수입은 보통 인부 노임단가를 적용해 3억109만원이라는 계산서를 정부는 내놓았다. 승희는 “재밌게 놀다올게. 갔다오면 열공빡공해야지. 사랑해”란 편지를 수학여행 전날 가족에게 남겼다. 승희는 재미있게 놀지 못했고 ‘열공’ 약속도 지킬 수 없었다. 봄이 시작할 때 대한민국의 봄은 부서졌다. 만장(輓章)이 해를 가리고 호곡(號哭)이 파도보다 높았던 그 봄이 가고 다시 봄이 왔다. 250명 아이들이 한날한시에 사라진 슬픈 도시, 안산에도 꽃이 피었다.” http://goo.gl/3ZasVg
사진을 누르면 경향신문 세월호 특별기획 http://sewol.khan.co.kr 으로 연결됩니다.
- [ 더 울라고 캡사이신 뿌려주는 경찰 ] 영국 미들랜드 버밍엄, 주택가 한복판에 소박하지만 잘 가꿔진 공원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 공원은 세상을 떠난 발달 장애 아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메모리얼 파크’다. 이 공원에 가장 많은 것은 누군가의 이름들이다. 이곳엔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들이 가득하다. 풀숲 중간중간에는 아이의 사진과 아이를 그리워하는 편지가 놓여 있기도 하다. 공원은 지나치게 엄숙하지 않고 편안하다. 변변한 추모공간은 고사하고, 노란 리본을 다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인 해석이 덧붙여지는 한국의 상황과 너무도 다르다.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추모 집회가 있었는데, 경찰은 시위대의 얼굴에 캡사이신(최루액)을 뿌려댔다. 얼굴은 쏜 건 캡사이신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기 위한 것일테고…얼마나 더 울라고 노란옷을 입은 유가족들에게도 예외없이 캡사이신이 뿌려졌다. 정진은 문화평론가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국민들을 이렇게 대하는 국가는 없다. 미국의 심리학자 퀴블러 로스가 말한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이라는 상실의 5단계에 비춰봐도 한국 사회는 아직 2단계인 분노에 멈춰 있는 셈이다. 다른 날도 아닌 4월16일에 해외 순방을 떠나는 대통령과 ‘4월의 어느 멋진 날에’ 콘서트를 열려다 부랴부랴 취소한 국회 사무처가 있는 한 우리는 2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쉰다. http://goo.gl/dWeU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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