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7일 경향신문

- [ 삶을 누더기로 만들지 말라 ] 일본의 현대사상가 모리오카 마사히로가 정의하는 ‘무통문명’은 겉으로는 안정을 확보한 채 잘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마치 중환자실에서 꼼짝하지 않고 잠만 자는 인간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문명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세월호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와, 세월호가 지겹다는 국민들에게서 무너져가는 공동체를 본다. 유가족을 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하지만 그들을 외면하는 삶은 이미 산 것이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우리 사회에서 상실감과 공포감 때문에 뒤틀린 감정을 안고 살아도 자신만 이득을 보고, 남의 아픔을 못 본 체하는 왜곡된 방어기제는 일시적으로 효과를 볼지 몰라도, 필연적으로 자기 삶도 함께 누더기로 만들어버릴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http://goo.gl/9XQzbB

- [ 4·16을 위로하는 5·18 ] 5·18  민주항쟁의 첫 희생자는 김경철이었다. 어렸을 적 약을 잘못 먹어 귀가 먼 스물여덟의 농아. 국제양화점에서 신발 만들면서 백일을 갓 넘긴 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던 소박한 가장. 광주버스터미널에서 계엄군들이 그를 학생으로 오인해 둘러쌌을 때 그는 구령을 따라 부르지 못해, 진짜 벙어리가 말을 못한다는 죄로 목숨을 잃었다. 말을 하는 이조차도 말문이 막힐 기막히게 억울한 시절이었다. 이제 그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1-1이라는 번호로 그날의 끔찍함을 증언한다. 그의 어머니 임근단씨를 비롯한 5·18의 어머니들이 팽목항을 찾았다. 전시기획자 송수정씨는 “1980년의 상처를 안은 이들이 2014년에 상처를 안은 이들을 위로해야 하는 현실은 서글프다. 5·18 특별법을 위해 무려 15년을 기다려야 했듯, 그 특별법 이후에 모든 억울함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듯, 세월호의 유가족도 다시 지리멸렬한 기다림과 싸워야만 하는가. 봄이 올수록 슬픈 날들이 더 많아지는 것은 역사가 앞으로 가지 않기 때문인가. 5·18의 어머니들이 4·16 어머니들에게 전한 말.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진짜 울음을 울어본 이들만이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위로. 그러나 이 위로가 필요한 봄날은 너무 잔인하다”고 말한다. http://goo.gl/rBTvPf

- [ ‘성완종 녹취 파일’ 절도 사건 ] JTBC는 15일 ‘9시 뉴스룸’에서 2분43초부터 8분까지 네 덩어리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육성을 화면 자막과 함께 21분간 방송했다. 성 전 회장의 장남 승훈씨는 JTBC 보도국에 전화를 걸어 “고인의 육성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 방송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고, 경향신문 박래용 편집국장도 “유족 동의가 없고, 타 언론사 취재일지를 훔쳐 보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JTBC는 “지금 방송 중단은 어렵다”며 그대로 보도했다. 뉴스가 진행되던 9시15분쯤 jtbc가 ‘음성 파일’을 입수한 경위가 확인됐다. 경향신문이 녹취 파일을 검찰에 제출하기 전 보안 작업을 돕겠다고 자진 참여한 디지털포렌식 전문가 김인성씨는 자신이 보안 작업 후 파일을 삭제하지 않고 JTBC 기자에게 넘겼다고 알려왔다. 경향신문은 “JTBC 보도국장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밤새 울먹이며 전화 온 유족들과 회사 관계자에게 음성파일이 공개된 데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JTBC 손석희 앵커는 16일 <뉴스룸> 클로징 멘트에서 “고인과 가족, 시청자를 위해 진실 찾기에 도움된다고 판단했지만 입수경위 등 돌아볼 것을 냉정히 돌아보겠다”고만 했다. 이미 당사자가 자백한 녹음파일 절취 및 입수·보도 경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사과도 없었다. http://goo.gl/YjGH4C 

- [ 메이저리그엔 등번호 42번이 없다 ]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를 기리는 ‘재키 로빈슨 데이’ 행사가 16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전 구장에서 열렸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로, 1945년 LA 다저스의 전신인 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해 1947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뒤 1956년까지 통산 타율 3할1푼1리, 1518안타 137홈런 734타점을 기록했다. 내셔널리그 최초의 신인왕이었으며 1962년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로빈슨이 선수로 뛰던 시절 미국은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였다. 로빈슨은 백인들의 무수한 살인 협박에 시달렸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같은 팀 선수들로부터도 견제를 받곤 했다. ‘재키 로빈슨 데이’는 인종차별과 당당하게 맞서 싸워 이겨내고 메이저리그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 인종차별이 없어지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한 로빈슨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4월15일은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처음 데뷔한 날이다. 이날 모든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로빈슨의 등번호 42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다. 메이저리그는 1997년 로빈슨의 등번호 42번을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http://goo.gl/KB7s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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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6일 경향신문

- [ 차마 애국가를 부를수 없는 이유 ] 우리의 애국가는 작곡가의 친일 행각이 밝혀져 오점이 찍혔지만 1960년 4·19혁명의 학생들도 1980년 오월 광주의 시민군들도 안익태 작곡의 이 애국가를 불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도 시민들은 애국가를 불렀다. 민주주의를 향한 애국가와 월드컵의 애국가는 격이 다르다고 얘기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애국가 역시 이상적 공동체를 꿈꾸며 불렀던 자발적 시민들의 노래였다. 하지만, 기억 속 애국가는  영화 <국제시장>의 국기 하강식 애국가처럼 국가와 사회의 존재 의의를 묻고 요청하는 시민의 노래가 아니었다. 반대로 시민의 자격을 억압적으로 심사하는 권력자와 관료들의 노래였을 뿐이다. 최유준 전남대 HK교수는 “애국가는 국민이 국가를 호출하는 노래여야지 그 반대일 수는 없다. 애국가가 진정 ‘나라 사랑하는 노래’라면 국가 공동체의 위기 상황에서 더욱 애절하게 불릴 것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탄식 속에서도 한국의 시민들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애국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국제시장> 국기 하강식 장면의 기억이 새겨진 애국가,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이 각인된 그 노래를 진도 앞바다를 향해서 차마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http://goo.gl/V5KMSh

[ 진실은 서민들 마음속에 있다 ] 진실은 어디에 있는 걸까. 러시아 혁명기를 대표하는 아나키스트 작가 보리스 사빈코프의 소설 <검은 말>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 같아요? 당이나 군지도부에 있나요?” “단언컨대 없어. 만약 있다면 공장, 병영, 시골마을 뭐 그런 데 있겠지. 소박하고 꾸밈없이 사는 이들에게….” 임의진 시인은 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 <시골편지>에서 “모든 진실들이 살아 눈을 뜨고 인양되어 올라올 것이다”라며 시골 백반집에서 서민들이 나누는 ‘진실’에 관한 대화를 들려준다. “몰강물(맑은물)이 어딨겄어? 저늠에 간디는(저놈의 곳엔) 통새(뒷간)보다 더 드런덴갑서. 파믄 팔수룩 몸통 등클(그루터기)이 장난이 아니구마.” “바닷물에 빠진 애기들을 하나라도 구했으야 애국씸이 생기고 말고 허는 것이재. 태극기 붙인다고 애국씸이 생겨? 벨짝시롭게(유별나게) 애국씸 타령이여.”  http://goo.gl/TP3H7D

- [ “꼭 꺼내줄게” ] “미안해. 아무것도 못해줘 미안해.” 세월호 참사 1주기 하루 전인 15일 오전 10시40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바다 3㎞. 1년 전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 현장. 유가족·생존자·실종자 가족 등 207명이 팽목항에서 치르는 위령제에 앞서 뱃길로 30㎞ 거리를 거센 물살을 가르며 달려왔다. 오전 2시 경기 안산을 출발, 5시간여 동안 버스를 타고 오느라 지친 표정이었으나 쉴 새도 없이 빌린 철부선에 몸을 실었다. 1시간여 항해 끝에 도착한 그때 그 바다엔 ‘세월’ 두 글자가 적힌 노란 부표가 파도에 뒤뚱거리고 있었다. 이를 악문 채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던 가족들…곳곳에서 울음이 터졌다. 부표를 향해 돌아 오라는 듯 손짓을 하던 단원고 허다윤양의 언니 허서윤씨(20)는 “동생아, 힘내라. 엄마 아빠랑, 이모랑, 내가 꼭 꺼내줄 거야”라며 눈물을 훔쳤다. http://goo.gl/7eg8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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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 조장하는 정부 ]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인플레이션 만큼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디플레이션도 국민경제에 많은 피해를 준다. 소비자들은 물가하락세가 지속되면 물가가 더 떨어진 다음에 소비하려 하기 때문에 소비가 계속 위축된다. 기업은 같은 물량을 팔아도 가격하락으로 매출액이 감소하고, 인건비 등의 비용을 줄이기 어려워져 수익이 악화된다. 이에 따라 정부의 조세 수입도 늘어나기 어려워 재정건전성이 악화된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수요 부진을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다. 담뱃세 인상과 일부 봉급생활자의 세금을 늘린 소득세 개편은 중·하위 계층의 처분가능소득을 감소시켜 소비를 줄인다. 물가하락을 틈탄 지하철 등 공공요금 인상도 비슷한 효과를 줄 것이다. 또한 정부가 집값 지지를 위해 조장하다시피 하는 전셋값 상승도 소비를 위축시켜 디플레이션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박근혜 정부가 현재와 같은 경제정책을 계속한다면 가계는 소비를 가능한 한 뒤로 미루게 되고, 이는 다시 물가와 성장을 떨어뜨린다. 경제는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진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침체의 늪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유이다. 일본은 선진국이 되고 복지도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태에서 경제가 위축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 국민이 겪는 장기침체와 디플레이션의 고통은 일본보다 훨씬 클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http://goo.gl/cI5Hxt

- [ 범에게 대든 건 ‘하룻강아지’가 아니다? ] 당랑거철(螳螂拒轍). <장자>의 ‘인간세편(人間世篇)’에 나오는 말이다.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힘은 생각하지 않고, 강한 상대나 되지 않을 일에 무모하게 덤벼드는 행동거지를 비유적으로 이른다. 당랑거철에 해당하는 우리말 속담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이다. 주로 철모르고 함부로 덤빌 때 비유적으로 쓴다. 김선경 경향신문 교열부 기자는 “한데 ‘하룻강아지’를 태어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로 아는 사람이 많다. 하루밖에 안된 눈도 못 뜬 강아지가 호랑이에게 대들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라며 “‘하룻강아지’의 어원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조항범 충북대 교수는 ‘하룻강아지’는 ‘하릅강아지’에서 변한 말이라는 게 통설이라고 주장한다. 하릅은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소, 말, 개 따위 가축의 나이를 이르는 말로 한 살을 의미한다. 옛사람들은 사람과 달리 가축의 나이를 셀 때는 하릅(1), 두습(2), 세습(3), 나릅(4), 다습(5) 등과 같은 말을 썼다”고 알려준다. http://goo.gl/8HEX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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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5일 경향신문

[ 부패한 자가 더 유능하다? ] 제나라 왕위다툼에서 패한 규(糾)의 추종자였던 관중은 그의 능력을 높이 산 포숙아의 천거로 재상이 된다. 관중은 보잘것없었던 제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곳간이 가득해야 예절을 알고, 의식(衣食)이 족해야 영욕(榮辱)을 안다. 위에 있는 사람이 절도가 있으면 육친(六親)이 뭉치고, 예·의·염·치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법령이 흐르는 물처럼 민심을 좇았다. 범속한 사람이 바라는 대로 허여해주고, 꺼리는 것은 제거해주었다. 관중의 정사는 화(禍)가 될 것을 복(福)이 되게 했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꿨으며, 일의 경중(輕重)을 잘 헤아리고 저울질에 신중했다. 밖으로는 주변국 제후들에게 신뢰를 주어 제나라를 따르게 했다. 그는 말했다. “주는 것이 갖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도(道)다.” 하지만 공자의 평가는 이중적이었다. <논어> ‘팔일’ 편에서 관중을 평가하기를, 그릇이 작았다, 검소하지 않았다, 또한 예를 몰랐다고 했다. 그런데 ‘헌문’ 편에서는 그의 공업(功業)을 들어 인(仁)하다고 평가하며 “천하를 크게 바로잡아 백성들은 지금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다”고 했다. 김태희 다산연구소장은 관중의 예를 들며 오늘의 현실을 “은연중에 도덕성과 능력을 택일적인 것처럼 생각하고, 다소 부패한 사람이 더 유능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생각도 있는 듯하다.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에겐 과도하게 도덕성을 요구하는가 하면,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기대되는 사람에겐 공직자라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도 포기한다. 부패와 무능이 쌍으로 난무한다”며 개탄한다. http://goo.gl/00vz3j

- [ 이정현에게 기회는 위기다 ] 친박계 핵심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으로까지 불렸던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57)이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두고 ‘하늘이 준 기회’라며 “박근혜 정부는 로비가 통하지 않는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정권 핵심들이 비리 의혹에 연루된 현실은 외면한 ‘아전인수’식 논리란 지적도 나온다. 이정현 최고위원은 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을 시작하며 이완구 국무총리를 답변석으로 부른 뒤 이 총리에게 답변은 요구하지 않고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언급하며 “저는 지금 상황이 하늘이 준 기회라 생각한다. 정치의 부패 뿌리를 뽑기 위해서라도 또 모든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끝까지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최고위원은 “성공한 로비와 실패한 로비, 한 정부는 로비가 잘 통했던 정권이고, 또 다른 정부는 로비가 전혀 통하지 않는 정권이라는 이 극명한 차이를 국민은 목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 측 의원들로부터 “아직도 상황을 그렇게 파악 못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정현 최고위원에게 경향신문 구독을 권유한다. http://goo.gl/VHMsPq

- [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대 ] 대화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시냇물이 모여 거대한 의미의 강을 이루는 것이며, 대화의 목적은 더 큰 지혜를 창출하는 데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정파적 취향에 맞는 모임에 가고 인터넷을 통해 대화를 하면서도 반대 입장의 사람들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것을 의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주의편향 또는 선택적 인지라고 한다. 이 병이 만연하고 있다. 지하철에 앉아서도 끊임없이 스마트폰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들여다보지만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광장에서의 단절이다. 신좌섭 서울대 교수는 “동종 그룹 내에 편중된 밀폐 대화는 사회적 의제에 대한 선택적 인지를 더욱 강화한다. 이렇게 되면 상대의 입장에서 사물을 볼 수 없고 상대의 기쁨이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공감할 수 없으니 경청도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http://goo.gl/Hny7zs

- [ 국가 개조는 커녕, 실종 상태 ]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는 ‘국가는 어디에 있었습니까’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세월호 참사 가족의 분노만은 아니다. 여러 전문가들도 참사 이후 두드러진 문제로 국가와 정치의 부재를 꼽는다. 세월호가 불법 증축과 과적 상태로 출항할 때까지 국가 감시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구조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참사 진실을 밝혀내고 재발 방지 체계를 갖추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국가 부재의 중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박 대통령은 참사 이후 국민 안전대책 마련, 관료 마피아 근절, 국민안전처 신설을 발표하며 국가를 대개조하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진상규명에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참사 가족의 여한은 풀어지지 못했다. http://goo.gl/xbsKWy 

사진을 누르면 경향신문 세월호 특별기획 http://sewol.khan.co.kr 으로 연결됩니다.

- [ 이름 없는 범죄 ‘제노사이드’ ]1941년 8월24일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BBC 생방송 연설에서 나치독일의 만행을 규탄했다. 그는 나치의 민간인 대량 학살을 두고 “우리는 ‘이름 없는 범죄(a crime without a name)’에 직면해 있다”고 표현했다. 독일의 살인특무무대가 빨치산 소탕을 명목으로 소련땅에서 자행한 민간인 학살을 지칭한 것이었다. ‘이름 없는 범죄’라고 한 것은 군대 간 전쟁이 아니라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쟁(war against peoples)’이었기 때문이다. 1944년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법학자 라파엘 렘킨은 ‘이름 없는 전쟁’에 ‘제노사이드(genocide)’란 이름을 붙였다. 종족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genos)와 살인의 라틴어(cide)를 결합시켰다. 이기환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제노사이드는 반드시 한 집단의 ‘즉각적인 파괴’만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어떤 집단의 절멸을 위해 자행되는 다양한 행위를 지칭했다. 집단의 존재기반을 서서히 와해시키는 ‘부드러운 절멸’도 포함시켰다. 창씨개명(정치), 모국어사용 금지 및 우민화정책(문화) 등도 역시 제노사이드다”라고 말한다. http://goo.gl/C37b3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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