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일 경향신문
- [<단독> MB정부 해외 투자유치 ‘황홀한 사기극’ ] 이명박 정부 때 외국 기업들과 체결했던 투자유치 양해각서(MOU) 가운데 절반은 투자가 철회되거나 7년째 유보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MB 정부가 최대 성과로 내세웠던 자원외교에 이어 대통령의 ‘세일즈 순방 성과’라고 치켜세웠던 투자유치 역시 ‘공수표’로 확인된 셈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백재현 의원이 31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MB 정부 당시 체결된 12건의 투자유치 MOU 가운데 6건이 투자 철회 또는 유보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철회·유보된 투자 규모는 12억9000만달러로,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1조5000억원이 넘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4월 뉴욕의 한 호텔에서 한국투자환경설명회를 열고 미국 기업인 400여명을 대상으로 코리아 세일즈에 나섰다. 그 결과 5개 기업과 11억8000만달러 규모의 투자 MOU를 체결했다. 당시 청와대는 “MOU 체결 규모가 전년도에 신고된 외국인 투자금액 105억달러의 11.2%에 달하는 규모”라며 당장이라도 투자를 받은 것처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11억8000만달러의 투자 MOU 가운데 물류기지 관련 10억달러는 이미 투자가 철회됐고, 반도체 제조시설(1000만달러)과 디젤차량 생산공장 관련 투자(1000만달러)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 투자 유보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체결된 전체 MOU 금액의 86%가량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곧바로 이어진 방일 기간에도 도쿄에서 한국투자환경설명회를 가졌고,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를 통해 5건의 MOU를 체결, 5억9000만달러의 투자유치 성과를 올렸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 중 경기 성남시 분당에 특급 관광호텔을 신축하겠다는 1억달러 투자 건은 철회됐다. http://me2.do/FSH5hrJc
- [ 일본군 장교가 독립운동가 둔갑 ] “동경고등사범학교에 재학하면서 조선유학생학우회에 가입하여 신입생환영회·망년회·웅변대회 등의 회합을 통하여 유학생의 단결과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1932년 조선일보사로 옮겨 편집국장·주필 등을 역임하여 민족언론을 위해 활동하였으나 1940년 일제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한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사에 들어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민족문화사전)>에 실린 일제시대 언론인 서춘에 관한 내용이다. 민족문화사전은 서춘을 ‘독립운동가’로 분류하고 매일신보사 입사로 설명을 끝맺었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속의 서춘에 대한 설명은 “1941년 매일신보사 주최 신춘 경제 대강연회에서 대동아건설과 국민의 각오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1941년 7월 중일전쟁 4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성전 4주년’ 기념강연회에서 대동아건설과 총후 국민의 진로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대표적 친일부역자를 설명하면서 친일 행적은 쓰지 않고 독립운동가로 둔갑시킨 것이다. 민족문화사전은 친일 행적을 두고 독립운동을 위한 포석이었다는 식으로 미화한 사례도 보인다. 일본군 대좌 출신 이응준에 대해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14년 5월 제26기생으로 졸업하였다. 군사력 양성으로 국권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뜻의 결실이었다” “일본군에 배속되어 1941년 대좌로 진급하였으며 8·15 광복 직전 민족운동가들과 협력하기도 하였다”고 썼다. <친일인명사전>은 이응준을 “일본군 장교로 재직하면서 일제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한편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일본 군인이 되어 천황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선동했다”며 “조선 청년에게도 국가 방위의 숭고한 병역의무가 부여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무상의 광영이며 명예”라고 한 이응준의 글을 근거로 제시했다. 민족문화사전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없다. 민족문화사전은 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성수·방응모·김활란 등을 설명하면서 친일 행적을 다루지 않았다. 박제순·권중현·이지용·이근택 등 ‘을사오적’에 속하는 이들을 서술하면서 인물 성격을 ‘관료’ ‘행정관료’ ‘문신’ 등으로만 분류했다. 을사오적 중 가장 잘 알려진 이완용에 대해서만 ‘친일파’로 분류했다. 역사 기록 속 ‘반민특위’를 가동해야 할 것 같다. http://me2.do/5CdrOcNG
- [ 설악산 케이블카, 박 대통령 조카에 특혜? ] 강원 속초시 설악산 해발 860m에 위치한 고려시대 산성인 권금성 터. 성벽은 사라졌지만 한때 이 일대에는 크고 작은 수풀들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케이블카가 40여년간 운행되면서 일대는 민둥산으로 변했다. 케이블카 운영업체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척이다. 설악녹색연합 등이 확보한 1960년대 권금성 일대의 사진과 최근 모습을 비교해 보면 케이블카가 설치된 이후 바위틈에서 자라던 각종 나무와 초본류들이 사라져 민둥 암벽으로 변해 버린 사실이 쉽게 확인된다. 설악산 권금성까지 들어선 총 길이 1128m의 케이블카가 처음 운행된 것은 1971년 8월부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위인 한병기씨가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인 1969년 허가를 받아 1971년 7월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이 된 지 한 달 만에 운행을 시작해 특혜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현재 설악산케이블카(주)의 대표는 한씨의 둘째 아들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조카가 맡고 있다. 한씨 일가는 44년간 설악산케이블카를 운행해 오면서 수백억원대의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이용객은 연평균 60여만명에 이른다. 이용료는 어른이 왕복 1만원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이 회사는 지난해 43억1264만여원, 2013년 43억9597억원의 당기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 회사는 현재까지 설악산환경보전기금 등을 부담한 적이 없다. 국립공원위원회가 지난 28일 운영수익 15% 또는 매출액의 5%를 설악산환경보전기금으로 조성토록 하는 등 7개 조건을 붙여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승인한 것과 대조적이다. http://me2.do/GrlN2rmH
- [ 독일 견재하려다 독일만 키워 ]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자 당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통일로 거대해진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 통합을 추진했다. 두 사람은 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주권을 확보하는 최선의 길은 ‘단일 통화’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유로화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강한 마르크화 때문에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던 독일 기업들은 유로화가 도입되자 날개를 달았다. 유로존 주변국들의 고통을 이용해 유로화의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가져간 덕에 독일은 수출로 엄청난 ‘부당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많은 사람들이 유럽 경제위기 속에서 힘의 정치를 부활하려는 메르켈을 이념보다는 국가 간의 힘과 실리에 기반을 둔 외교정책을 펼친 비스마르크나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에 비유하고, 패전국에서 ‘유럽의 병자’가 되었다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독일을 ‘양의 탈을 쓴 늑대’로 지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독일의 첫 통일이 이뤄졌던 1871년부터 패전국으로 몰락한 1945년에 이르는 기간에 ‘공격적인 권력으로 행동하는 강대국의 모습 그 자체’였던 독일의 대외정책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책이 또 다른 ‘대재앙’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합니다”라고 말한다. http://me2.do/FHbAykOM
- [<단독> 일요일 새벽, 택시를 조심하라 ] 시내버스는 한 주의 첫날 근무를 마치고 차고지로 복귀하는 월요일 자정 무렵이, 택시는 통행량이 적어 과속하기 쉬운 일요일 새벽에 보행자 사망사고가 많이 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화물차는 물동량이 많은 목요일 오전, 렌터카는 휴일인 일요일 새벽이 음주운전 등으로 인한 사망 요주의 시간대로 분석됐다. 교통안전공단은 최근 5년(2010~2014년)간 사업용차량으로 인한 사망사고 4705건을 정밀 분석한 ‘업종별 사업용 자동차 교통사고 예방대책’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경향신문 경제부 박병률 기자가 단독보도한 보고서를 보면 시내버스 사망사고는 5년간 전체 사망자 585명 중 16.9%인 99명이 월요일에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대로는 22~24시가 가장 많았다. 한 주의 첫날 근무를 마치고 버스가 차고지로 급하게 돌아가면서 교차로 신호를 무시해 보행자를 많이 친 것으로 보인다. 사망사고 원인으로는 버스의 신호위반(16.9%)이 가장 많았다. 보행자 사망의 78.1%는 전방주시태만이었다. 시내버스는 차량과 부딪치는 것보다 주로 보행차를 치는 경우가 많아 ‘차 대 사람’ 사고가 전체의 74.9%였다. 택시는 전체사망자 1235명 중 17.7%인 219명이 일요일에 사망했다.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시간대는 0~2시였다. 이 시간대는 일명 ‘총알택시’들이 과속을 하다가 보행자 사망사고를 많이 낸 것으로 보인다. 전체 사망사고의 68.6%가 보행자를 친 것으로 분석됐다. 보행자 사망의 77.1%는 전방주시태만이었다. 특히 택시운전자의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가 35명에 달했다. http://me2.do/5NkAZv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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